아폴로 계획
1970년이 되기 이전에 인간을 달로 보내겠다고 공언했던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의 말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으나 결국 1969년 7월 20일 16:18(미국동부 표준시)에 인류가
달에 착륙하게 되면서 인류의 오랜 꿈도 실현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폴로 계획이라고 명명되어진 인간의 달 탐사 계획은 달 탐사에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얻기 위해 머큐리, 제미니계획을 수행해야만 했고, 심지어 아폴로 1호는 발사 연습 중에 우주선 속에서 발생한 화재로
유능한 우주인 3명 버질 I. 그리섬(Virgil I. Grissom), 에드워드 H. 화이트(Edward H. White
II), 로저 B. 채피(Roger B. Chaffee)을 잃는 참사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 후, 1년 10개월 뒤인 1968년
10월 11일에 아폴로 7호의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달에 대한 도전은 다시 재개되었고, 결국 아폴로 11호가 달을 정복하게 되었다.
아폴로 호는 새턴(Saturn)로켓을 사용하여, 사령선, 기계선, 달착륙선으로 이루어진 3개의 우주선을 우주에 진입시키고, 그
후에는 이 세 개의 우주선에 의해서 달의 탐사를 수행하게 하는 형식이다. 이 세 우주선이 우주에 진입한 후에 달로 향하고, 달에는
달착륙선이 도착하여 임무를 수행한다. 이때, 사령선과 기계선은 서로 붙어서 달 주위를 돌며, 달착륙선이 임무를 다하고 달에서
이륙하게 되면, 도킹하여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구대기에 도달하면 사령선만이 지구로 들어와
긴 여정을 끝마치게 된다.
아폴로 계획은 우주개발계획에 있어서 미국이 그동안 소련에게 뒤쳐지던 이미지를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폴로 계획이 종료된 후,
아폴로 프로그램을 위한 총 자금 제공은 약 19,408,134,000달러로 이는 NASA 예산의 34%였다.
아폴로 7호는 쉬라 주니어(Wally Schirra, Jr.)에 의해 통제되고 승무원 에이젤(Donn Eisele)과 커닝험(Walt
Cunningham)으로 구성되었다. 이 아폴로 7호 우주선은 1968년 10월 11일 발사되었다. 아폴로 7호 시험비행의 첫
번째 목적은 간단하다. "사령선/기계선(Command/Service Module, CSM)의 성능을 증명하고, 사람이 탄
사령선/기계선의 임무수행 동안 승무원, 우주선과 임무를 뒷받침하는 설비의 성능을 증명한다. 그리고 사령선/기계선의 랑데부 능력을
증명한다." 11일 가까이 사령선은 수많은 시험을 통과했다. 거의 예외 없이 우주선 시스템들은 계획대로 움직였다. 사령선과 달
궤도 밖에서 발사되는 기계선 추진 시스템은 마지막 0.5초에서부터 67.6초 동안 완벽하게 작동했다. 그 임무의 마지막 163번째
궤도에서 승무원들은 수백만의 세계 사람들에게 우주의 모습을 텔레비전 방송으로 처음 보여주었다.
그 후 우주선은 노련하게 정상궤도를 이탈하고, 들어와서 착륙하는 순서로, 버뮤다(Bermuda)의 남동쪽 대서양에 착륙했다. 이 지점은 계획된 지점으로부터 2km 미만으로 아주 정밀하였다.
아폴로 8호는 사람을 태우고 달 궤도를 도는 임무를 가졌다. 우주비행사 프랭크 보먼(Frank Borman), 제임스 로벨 주니어(James
A. Lovell, Jr.), 그리고 윌리엄 엔더스(William A. Anders)는 달의 측면을 보게 된 첫 번째 사람들이
되었다.
이 임무는 운영상 능숙한 경험에 도달하는 것과, 지구-달사이의 공간과 달 궤도에서의 통신, 추적, 생명유지 장치를 포함한 아폴로 명령체계를 시험하며, 달 궤도 임무에서 승무원의 행동 평가를 포함했다. 승무원은 달 표면의 가까운 쪽과 먼 쪽을 촬영하였는데, 이것은 후에 아폴로가 착륙하기 위한 과학적 정보가 되었다.
아폴로 8호는 아폴로 7호에서 앞쪽의 압력에 제거될 수 있는 해치들을 제외시켜 나중 계획에서 달착륙선으로 쉽게 이동하기 위해
결합되어진 사령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우주선은 소모품, 추진 체를 포함한 CSM 전체 무게는 28,817 kg이었다.
달착륙선은 아폴로 8호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달착륙선의 시험을 위해서 그와 동등한 질량(9,027㎏)을 맞추기 위해
모래주머니와 같은 용도로 우주선에 탑재되어졌다.
아폴로 9호는 플로리다 주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동부표준시로 1969년 3월 3일에 발사되었다. 이 아폴로 9호는 달착륙선에 처음으로 사람이
탑승하였고 계획에 착륙선이 알맞게 제작되었는지 확인하였다. 지구궤도에서의 10일 임무 중 70시간동안 달착륙선은 사령선과 세
발이 펴진 상태로 있다가 떨어지고, 다시모여 도킹하였다. 착륙이 계획되었던 지점에서의 악천후로 인해 아폴로 9호는 지구로 귀환하기
전 추가로 궤도를 더 돌아야 했다.
아폴로 10호는 달 궤도를 도는 임무를 가진 두 번째 아폴로 우주선이었고, 사령선/기계선과 달착륙선으로 구성된 모든 아폴로 우주선 중,
처음으로 달을 여행하였다. 주된 임무는 승무원이 달과 지구간 궤도사이와 달에서의 달착륙선 상태를 관찰함에 있어서 임무를 능숙하고
확실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임무는 달에 착륙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계획을 수행하였는데, 바로 아폴로 11호의 '예행연습'이었던
셈이다. 3월 22일 토머스 스태포드(Thomas Stafford)와 유진 서넌(Eugene Cernan)은 달착륙선에 탑승하였고
기계선에서 발사되어지는 분사제어로켓에 의해 달착륙선은 사령선과 분리된다. 달착륙선은 달의 표면 위를 낮은 고도로 통과할 수 있는
궤도로 쏘아졌으며, 달과 불과 약 9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접근 하였다. 달착륙선의 모든 시스템은 통신, 추진력, 고도
조정, 그리고 레이더를 포함하여 분리되는 동안 시험되어졌다. 달착륙선과 사령선의 랑데부와 재도킹이, 전체적으로 달을 31번을 돈
후에(분리된 8시간 후인 5월 23일) 실행되었다. 각 우주선의 모든 시스템은 근접거리에서 작동하게 되는 달착륙선에 탑재된 자동
중지 유도 시스템을 제외하고는 계획대로 작용되었다. 또한 달착륙선과 사령선으로부터 달 표면의 대규모 사진과 함께, 텔레비전용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지구로 전송하였다. 아폴로 10호의 사령선 '찰리 브라운'은 영국 런던의 과학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아폴로 11호의 발사 목적은 달 표면에 사람이 서는 것과 그들이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승무원들은 대장 닐 암스트롱(Neil A.
Armstrong),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 그리고 달착륙선 조종사 에드윈 올드린
주니어(Edwin E. Aldrin, Jr.)로 구성되었다.
아폴로 11호가 달 궤도에 진입한 것은 발사된 후 76시간이 되어서였다. 마지막 한 바퀴를 돈후, 대장 암스트롱과 달착륙선 조종사
올드린은 달 표면에 착륙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달착륙선에 들어갔다. 사령선/기계선과 달착륙선, 이 두 우주선이 도킹에서
풀린 것은 발사된 지 100시간이 지난 때였다. 달착륙선은 미 동부 서머타임(EDT)으로 오전 4:18에 '고요의 바다'에
착륙하였다.
달착륙선 카메라는 미 동부 서머타임으로 오전 10:56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서 걷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중계하였다. 암스트롱은 달착륙선에서 내릴 때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 하나의 거대한 도약이다."
달착륙선 조종사인 올드린이 내려와 달에서 걷게 된 것은 미 동부 서머타임으로 오전 11:16이었다. 올드린은 작동과 움직임이 가능한지를 어림잡아 시험하고 나서, 확신과 함께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돌아와서 실험을 위해 달 표면의 물질을 채취하였다. 표면탐사는 2시간 30분정도 지속 되었고, 그 후 승무원들은 달착륙선으로 돌아왔다.
달에서 이륙 후, 달착륙선은 사령선/기계선과 도킹하였다. 승무원들은 사령선/기계선으로 옮겨 타고 상승단계에서 투하되어진 후, 지구로 향하는 궤도에 진입시켜지기 위해 준비하였다. 오직 한번 궤도중간에서의 정정이 필요하였고, 대부분 수동적으로 열이 제어되면서 지구로 향해졌다. 대기에는 수직으로 진입하였고, 사령선은 태평양에 195시간 18분 만에 착륙하였다. 착륙지점은 선내에 탑재된 컴퓨터에 의해서 결정되었는데 위도 13.30°, 경도 169.15° 이었다. 이 아폴로 11호의 성공과 함께 달 표면에 사람이 도달하는 것과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시키는 국가적 목표가 성취되어졌다.
아폴로 12호는 달 표면의 바위 표본을 추출하는 미션을 가지고 달로 향했다. 이는 달 과학적 탐사의 첫 번째 기회였다. 사령선 조종사 리처드
고든 주니어(Richard Gordon, Jr.)가 달 궤도에 남아있을 때, 아폴로 12호의 달착륙선(lunar module,
LM)은 '폭풍의 대양'(Oceanus Procellarum)에 있는 크레이터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착륙했다. 착륙지점은 경도
23.4°, 위도 3.2°로, 대략 '지식의 바다'(Mare Cognitum)의 중심부로부터 정북 방향이다.
전체적으로 7시간 45분 시간동안 우주 비행사들은 달의 표면을 탐험했고, 달의 지질학적 측량을 위한 표토 채취와 함께 추가적으로
표면의 표본을 채취하였다. 사령관 찰스 콘라드 주니어(Charles Conrad, Jr.)와 달착륙선 조종사 앨런 빈(Alan
Bean)은 얕은 홈의 바닥에서 물질을 획득하였고, 우주선에서 가지고 나온 알루미늄 호일로 약간의 태양풍을 수집하였고, 달 표면의
사진과 승무원의 활동을 카메라를 이용하여 촬영하였다.
아폴로 13호는 달의 프라 마우로(Fra Mauro)지역에 착류할 예정이었으나, 이 착륙지역은 아폴로 14호에게 넘겨줬다. 임무가 시작된 후
46시간 43분이 지나고, 우주선과의 교신 담당인 조 커윈(Joe Kerwin)은 "The spacecraft is in real
good shape as far as we are concerned. We're bored to tears down
here.(현재 우리가 볼 때는 우주선의 상태는 매우 좋다. 우리는 눈물이 흐를 정도로 지루하다)"라고 말했다. 9시간 12분후,
아폴로 13호 기계선의 산소탱크가 폭발하였다. 사령선의 전기, 빛 그리고 물의 공급이 끊긴 것은 그들이 지구로부터
321,869km 떨어진 곳이었다.
제임스 로벨 주니어(James Lovell, Jr.)는 헐떡거리며 말했다. "이봐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그는 밖을 바라보며
휴스턴에게 보고했다. "무엇인가 우주로 방출되고 있어." 그리고 교신담당자는 "라져, 접수했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로벨이
가스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고, 우주선의 산소탱크에서 산소가스가 초당 높은 비율로 빠져나갔다.
만만치 않은 일이 승무원과 지구의 통제원들 앞에 있었고, 계획은 즉시 변경되었다. 승무원들은 줄어드는 기계선의 공기압력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달착륙선으로 이동하였다. 달 주위를 돌고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달착륙선과 사령선에 연료가 남아야 했다. 폭발에 의한 파편들 때문에, 항해 시스템은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승무원들은 다시 추운 사령선으로 돌아왔고, 달착륙선과 기계선을 방출시켰다. 그리고 승무원들은 폭발 후 거의 4일 만에 대서양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아폴로 13호의 착륙예정지였던 프라 마우로(Fra Mauro)는 전체적으로 달의 왼쪽으로 많이 분포하고 있다. 아폴로 13호가 달 착륙에 실패하자, 아폴로 14호는
프라 마우로의 중요성을 들어 이곳에 착륙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최종 착륙지는 아폴로 13호에서 선택되어졌던 지역과 매우
가까웠다. 사령관 앨런 B. 셰퍼드 주니어(Alan B. Shepard, Jr.)와 달착륙선 조종사 에드가 D. 미첼(Edgar
D. Mitchell)은 전체적으로 두 번에 걸쳐 9시간 21분 동안 월면보행을 실시하였다. 마지막 보행을 끝내기 직전에 앨런
B. 셰퍼드 주니어는 달에서 골프를 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달에서 이륙한 후, 달착륙선은 스튜어트 A. 루사(Stuart
A. Roosa)에 의해 조종되는 사령선과 랑데부하였다.
아폴로 15호는 이전의 계획들과 비교했을 때 과학적 자료의 수집을 위해 더 많은 도구들을 사용하였고, 더 넓은 범위와 긴 주기 동안 달에서
탐사하는 것을 계획한 첫 번째 도전이었다. 이 계획에는 달 표면을 최고 16㎞/h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월면차'가
도입되었다. 성공적인 아폴로 15호의 임무는 달 표면 조사를 위한 과학적인 수집물과 아펜니네 산맥(Apennine
Mts)지역부근에서 선택되어진 표면형태조사와 암석채취, 측량, 그리고 비행 중 표면관측을 위한 기기 설치와 실험의 수행, 달
궤도를 돌면서 사진 찍는 일 등이다.
월면보행은 세 번에 걸쳐서 18시간 33분 동안 시행하였다. 사령관인 데이비드 R. 스콭코트(David R. Scott),
달착륙선 조종사인 제임스 어윈(James B. Irwin)은 첫 번째 달의 광범위한 과학적 탐험을 마무리 지었다. 아폴로 15호는
처음으로 달착륙선이 이륙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고, 알프레드 워덴(Alfred M. Worden)이 우주공간에서
유영하는 것이 녹화되어졌다. 달에서 얻은 여러 자료들은 이전의 계획들과 비교했을 때 두 배정도 늘어났다.
아폴로 16호는 1972년 4월 16일 케네디 우주센터(Kennedy Space Center)에서 발사되었다. 승무원들은 사령관 존 W.
영(John W. Young), 사령선 조종사 토머스 K. 매팅리(Thomas K. Mattingly II), 달착륙선 조종사
찰스 M. 듀크 주니어(Charles M. Duke, Jr.)로 구성되었다.
착륙 후 세 번에 걸쳐 월면보행이 20시간 17분 동안 영과 듀크에 의해 이루어졌다. 승무원들은 달 표면에 71시간동안 머물렀고, 달 표면에서 이륙한 후 달착륙선은 사령선과 랑데부하였다. 승무원들이 귀환궤도에 진입했을 때, 사령선 엔진결함의 발견으로 긴장감이 증가되었으나, 통제실과의 교신이 복구되었고,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승무원들은 무사히 지구로 귀환할 수 있었다.
달에 대한 인간의 첫 번째 활동적인 탐험이 아폴로 17호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폴로 계획의 집중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동안 달에 대한 많은 과학적 질문들에 대한 답이 나왔으나,
더욱 많은 질문들이 남게 되었다. 답이 나오지 않은 몇몇 질문들은 분석되지 않은 많은 자료들로부터 조만간 해결될 것이고, 몇몇은
달 표면에 설치한 기구들로부터 나오는 자료들에 의해 해결될 것이다. 그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질문들은 또 다른 탐험에 의해
해결될 것이다. 아폴로 17호의 기본적인 목적은 분지주위의 고지대 물질과 바다 물질들의 암석샘플 채취, 그리고 이 둘의 지질학적
진화관계를 조사하는데 있었다. 지질학자이기도 한, 사령관 유진 서넌(Eugene Cernan)과 달착륙선 조종사 해리슨
슈미트(Harrison Schmitt)는 22시간 2분 동안 월면탐사를 시행하였다.
표면과 공간형태에 관한 수많은 연구는 아폴로 17호 승무원들의 궤도상 관측과 미터단위로 촬영한 카메라 사진들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구의 범위는 크레이터 각각의 구성 연구와 바다의 층위, 봉우리의 배열 연구, 태양의 코로나의 연구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