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의 역사
우리들 머리 위에서 항상 빛나는 별들은 인류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 했었다. 원시인들도 별을 보면서 우리와 같은 호기심이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좋은 눈을 가진 사람들은 희미한 별의 무리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건 은하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1800년대 후반에만 하더라고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하늘을 자세히 보면 몇몇 뿌옇게 보이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은하이다. 그리고 은하수의 주변에 별들이 모여 있는 부분은 대부분 구상 성단이다. 처음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관심을 가지고 성도와 비교하여 자주 관측하는 사람은 금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9C 사람들은 우리은하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우리 은하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모양인지 몰랐으며 매우 궁금해 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바로 '우리 은하가 유일한 존재 인가?' 또한 '크기는 어느 정도 되는가?'였다. 초기 은하의 모형에 대한 이론은 두 가지 이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샤플리와 카프타인의 이론이다.
할로우 샤플리(Harlow Shapley)는 은하수 주변의 구상성단을 연구 끝에 거리가 예전에 알려진 우리은하의 거리보다 10배나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샤플리는 구상성단이 우리 은하 밖에 있는 외부 항성계라고 생각했으나 구상성단이 대칭적으로 분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우리 은하의 크기를 늘려서 기록하였다.
그리고 하늘 군데군데 별의 밝기를 구하여 우리 은하의 크기를 구한 천문학자는 야코부스 카프타인(Jacobus C. Kapteyn)이다. 구상성단 M22와 나선은하를 관측하여 카프타인은 빛의 흡수가 없다고 가정하여 우리 은하의 지름이 약 10kpc 이고 두께가 2kpc인 항성계라고 했다. 한편 릭 천문대의 커티즈는 나선은하에서 신성을 발견하여 이 신성이 우리 은하의 신성보다 10등급의 차이가 남을 발견하였다. 커티즈는 이 발견으로 신성의 밝기는 비슷하다고 가정하고, 섬 우주론(카프타인이 주장하는 이론으로써 은하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고 생각)을 지지하고 우리은하에 대한 카프타인의 이론을 지지하게 되었다.
고속도별
고속도별은 말 그대로 고속으로 움직이는 별을 말한다. 이러한 고속도별은 우리 은하가 회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계산을 하다 보니 구상성단의 속도가 92km/s가 나왔다. 이런 속도로 움직이면 우리 은하가 200배 나 큰 질량이어야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면 크기는 샤플리의 이론 보다 작고 카프타인 보다는 훨씬 크다고 나오게 된다.
흡수문제
흡수문제란 우리와 관측하는 천체 사이에 존재하는 성간 물질들에 의한 빛의 흡수를 말한다. 은하의 연구에 가장 큰 문제가 거리문제라고 할 수 있다. 거리 문제 다음으로 천문학자들을 어렵게 한 것이 바로 이 흡수의 문제이다. 흡수 문제는 여러 해 동안 제시되어 왔지만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샤플리는 흡수 효과를 무시했고 만약 흡수가 존재 한다면 샤플리의 은하의 거리는 줄어 들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천문학자는 로버트 트럼플러(Robert Julius Trumpler)였다. 그는 성단의 거리를 결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였다. H-R도를 이용하여 절대등급을 알 수 있는 별의 겉보기 등급을 이용하는 것과 성단의 거리와 겉보기 크기 사이의 반비례 관계를 이용했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 구한 거리가 다르자 그는 흡수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였고, 은하 중심에 흡수 매질이 많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이제 캅테인의 거리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으며 샤플리의 거리도 1/3로 줄어들었고, 구상 성단은 타원체가 아니라 구형이라고 밝혀졌다.
외부은하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외부은하의 존재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1924년 허블이 세페이드 변광성으로 M31의 거리가 285,000pc라고 발견하여, 이 은하가 우리은하 외부에 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반마넨의 실수
처음부터 허블의 이론이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반마넨(Adriaan van Maanen)이 주장한 나선 은하의 각운동량이었다. 반마넨의 측정 결과는 나선은하의 회전속도가 매우 빠르며 이것은 나선은하가 매우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매우 많이 공격을 받았지만 방대한 자료와 정확한 관측은 여러 천문학자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1925년 이후로 반마넨의 주장은 힘을 잃어 갔다. 조엘 스테빈스(Joel Stebbins)는 분광학을 이용하여 나선성운을 관측하자 반마넨이 주장한 방향과 반대 방향임을 알게 되었다. 이후 1935년 M31, M51, M81, 그리고 M101을 반마넨이 사용한 건판을 이용하여 관측하자 변위를 찾아 낼 수 없었다. 결국 반마넨의 이론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면 반마넨의 관측오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 원인으로는 관측기기의 오차와 계산의 오차 그리고 관측자의 오차, 이 세 가지 정도의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관측기기와 계산의 오차는 거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고, 아직도 체계적으로 설명한 학자는 없다.
이후 우리 은하의 거리가 정해지고 나선은하의 존재 및 거리가 밝혀지자, 이제 은하의 모양과 진화 문제가 관심받기 시작했고, 우주의 탄생에도 관심이 모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