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
우리가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별을 바라보게 되면, 그들이 하루에 한 번씩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하늘과 천체의 모습을 보면서 고대 사람들은 하늘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새롭게 변화되어 갑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하늘과 천체를 끊임없이 바라봤던 위대한 천문학자들과 만나볼까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당시, 지구가 평평한 바둑판처럼 생겼다고 여기던 많은 사람들에게 지구가 둥글다는, 지구 구형설을 제시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문학자는 아니었지만, 정치, 예술, 윤리, 천문학 등 다방면에서 학식이 뛰어나 그 당시 사람들은 그의 말을 곧 진리라고 여길 만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자신의 학설을 증명하기 위해 두 가지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는, 월식이 진행될 때마다 달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가 항상 둥글게 나타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구형의 물체만이 항상 둥근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내세운 증거였죠. 또한,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북쪽의 별을 볼 수 없게 되고, 북극성의 고도가 감소하는 것을 증거로 지구의 모양은, 둥근 원 모양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의 천문학자하면 이 사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당시 모든 천문학의 지식을 집대성해 13권의 책으로 출간한 프톨레마이오스입니다. 그의 책 <알마게스트>는 고대 그리스 천문학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천구 상에서 행성들의 역행과 순행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습니다.
이 같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은 지구 중심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틀린 것이지만, 과거 어떤 처계보다도 정확하게 행성들의 위치와 운동을 예측해 냈다는 사실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고대 최후의 위대한 천문학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제 천문학은, 새로운 학문과 예술이 부활하던 르네상스시기를 거치면서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새로운 지적 혁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천체가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금까지의 학설을 뒤엎고, 처음으로 태양 중심의 우주 이론을 주장한 천문학자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 지동설을 제창했지만, 그 당시, 그의 이론을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토론되어졌고, 결국, 그의 이론은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처럼 새로운 우주 이론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 천문학자가 있는가 하면, 천체의 정밀한 관측을 위해 인생을 바쳤던 사람도 있습니다. 덴마크 출신의 천문학자인 티코 브라헤는, 북해섬에 Uraniborg(우라니보르그)라는 천문대를 설립하고, 천체의 위치와 운동관측에 전념했습니다. 그가 행한 관측의 정밀도는, 망원경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가장 훌륭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훗날 그의 방대한 관측 자료는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에게 넘겨져 행성운동의 세 법칙을 확립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습니다.
스승과 제자사이였던 브라헤와 케플러 사이에는 특별한 일화가 있습니다. 평소 제자인 케플러의 명석함을 시기했던 티코 브라헤는 많은 자료를 케플러에게 주는 것을 꺼려했고, 결국,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가 남긴 귀중한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죠. 천체의 위치와 운동관측을 기록한 스승의 자료를 20년 이상 연구한 끝에 케플러는 그 유명한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케플러의 제1법칙은, "각행성은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따라 태양의 주위를 회전한다." 는 타원궤도의 법칙입니다.
케플러 제 2법칙은,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으로 "행성과 태양을 잇는 직선은 같은 시간 간격에서 같은 면적을 지나간다." 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케플러 제 3법칙은, 조화의 법칙으로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궤도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즉 태양으로부터 멀리 있는 행성일수록 공전주기도 길어진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은, 행성의 운동을 정확히 설명해주고 있지만, 이런 체계를 따르도록 지배하는 자연의 힘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이 남은숙제는 이제, 뉴턴에게로 넘겨졌습니다.
뉴턴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갈릴레이 갈릴레오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학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을 때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가지고 하늘을 관측하기 시작했습니다. 관측 결과 목성 주위를 도는 네 개의 위성을 발견 했고, 이로써 지구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 천체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갈릴레오의 놀라운 연구결과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은 더욱 힘을 얻게 됐지만, 정작 갈릴레오 자신은 태양중심설을 절대 진리로 주장하는 바람에 종교 재판까지 받게 됐고, 결국 집밖으로 나올 수 없는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티코브라헤, 케플러, 갈렐리오 등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모아진 천문학의 관측들과 규칙들은 이제 아이작 뉴턴이 성립한 개념적 틀에 의해 완전하게 설명이 가능해졌습니다. 뉴턴은 현대 물리학의 길을 열어 준 세 가지 법칙을 발견함은 물론, 만유인력의 법칙도 발견해 케플러의 세 번째 법칙이 증명됨으로써 천문학발전에 기여를 하였습니다.
뉴턴의 제 1법칙은, 버스가 급정지를 할 때 몸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치우치는 것처럼 움직이는 물체에 작용하는 외력이 없다면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관성의 법칙입니다. 제 2법칙은, 힘의 법칙으로 힘은 질량과 가속도에 비례함을 규명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힘으로 야구공을 던질 때와 볼링공을 던질 때 확연히 가속도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을 말하죠. 세 번째 법칙은, 작용반작용의 법칙으로 빙판위에서 한 사람이 서있는 다른 한사람을 밀었을 때 서 있는 사람도 움직이지만, 민 사람도 뒤로 밀려나는 것처럼 모든 작용에는 항상 방향이 반대이고 크기가 같은 반작용이 따르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뉴턴은, 이 세 가지 법칙 외에도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만유인력 법칙도 개발했습니다.
이렇듯 천문학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천문학자들의 집념과 열정 덕분에 오늘날 현대 천문학은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천문학 발전을 이끌었던 주인공들은 누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한국의 천문학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장영실이요 장영실밖에 잘 모르겠습니다. 천문학자는 잘 모르겠어요... 장영실이요. 모르겠어요... 이천? 선덕여왕 세종대왕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에게 잘 알려진 학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아주 많습니다. 그럼 이제, 오래 전, 이 땅 위에서 천문학이라는 학문을 꽃 피웠던 자랑스러운 한국의 천문학자들을 만나볼까요.
먼저 고려왕조 시기,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는 바로 오윤부입니다. 고려사 기록을 보면 그는, 충렬왕 때 여러 관직을 거쳐 높은 관직까지 올라갔었고, 별을 보고 사람의 길흉을 예언하는 점성술에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 때 분실되었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왕조시대의 천문학자였던 류방택에 의해 천체들의 위치가 재계산 되어서 석각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유일하게 돌에 새겨진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천문도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지난 1985년 국보 제 228호로 지정됐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이천은, 간의, 소간의, 혼의, 혼상, 해시계 등 천문기기의 제작을 책임지면서 세종시대의 인쇄술 발달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영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이죠? 사실 그는 천문학자라기보다는 공학자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과학자 이천과 함께 해시계 현주일구 등 많은 천문기기를 제작하는 데 힘써 우리나라의 천문학 발전에 큰 도움을 준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조선 전기 최고의 천문학자라 불리는 이순지는, 천문·역산·지리·수학 등의 분야에서 크게 공헌을 했으며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옛 학자들의 자료를 엮어 천문, 역법 등의 여러 책들을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천문기기를 사용해 직접 천문을 관측하기도 했죠.
이순지와 함께 세종대의 천문 ·역산 등의 분야에 크게 공헌한 또 한 사람이 김담입니다. 그는 이순지와 함께 ‘칠정산내외편’을 저술했는데, 이것은 조선을 기준으로 한 최초 역법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계식 혼의는 조선후기, 송이영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가 제작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 이 혼천시계는 현재 고려대학교에 소장돼 있으며 국보 제 230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한국의 코페르니쿠스로 불리던 홍대용은, 조선 후기 지전설을 주장했던 학자입니다. 최초의 지전설을 내세운 것은 조선후기 학자 김석문이었지만, 홍대용의 지전설은, 지구의 자전은 받아들이고, 공전은 받아들이지 않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조선후기에 활동했던 남병철, 남병길 형제는 천문과 역 계산에 정통하여 "수륜지구의", "의기집설", "추보산해"와 "성경", "시헌기요", "추보첩례"등을 저술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천문학 발전에 공헌했던 수많은 천문학자들을 만나봤습니다. 그들의 우주를 향한 무한한 호기심과 연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여전히 지구는 평편한 바둑판 모양이고, 하늘이 머리위에서 돌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신비하고 놀라운 천문학의 세계를 우리에게 선물해준 수많은 천문학자들의 땀과 노력에 고마움을 전하며 앞으로도 그들이 만들어가는 천문학의 미래가 밤하늘에 떠 있는 저 별처럼 환하게 빛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