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천문기록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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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가능 기간 : 삼국시대 ~ 조선시대 (BC 37 ~ AD 1910)
고천문기록 검색결과
전체개수 25,360건
페이지 1,490/2,536
| 번호 | 양력날짜 음력날짜 |
일진 | 천문현상 |
|---|---|---|---|
| 10,470 |
1483년
7월
26일
1483년 6월 22일 |
계미 | 유성(流星)이 천진성(天津星)에서 나와 누성(婁星)으로 들어갔다. [조선실록 [원전] 10집 474면] |
| 10,469 |
1483년
7월
27일
1483년 6월 23일 |
갑신 | 유성(流星)이 천시원(天市垣)에서 나와 저성도(?星度)로 들어갔다. [조선실록 [원전] 10집 474면] |
| 10,468 |
1482년
8월
19일
1482년 8월 6일 |
임인 | 밤에 유성(流星)이 방성(房星)을 나와 항성(亢星)에 들어갔는데, 그 모양이 주먹과 같고 꼬리의 길이가 반 자[尺] 가량 되었다. [조선실록 [원전] 10집 366면] |
| 10,467 |
1481년
8월
3일
1481년 7월 8일 |
신사 | 밤 4경(更)에 유성(流星)이 천진성(天津星) 자리에서 나와 직녀성(織女星) 자리로 들어갔는데, 꼬리의 길이가 1장(丈)쯤 되었다. [조선실록 [원전] 10집 242면] |
| 10,466 |
1481년
6월
3일
1481년 5월 6일 |
경진 | 유성(流星)이 북두(北斗)에서 나와서 동쪽 방면으로 들어갔는데, 그 모양이 병(甁)과 같았고, 그 길이가 3척(尺)쯤 되었다. [조선실록 [원전] 10집 212면] |
| 10,465 |
1480년
12월
17일
1480년 11월 16일 |
임진 | 월식(月食)하였다. [조선실록 [원전] 10집 175면] |
| 10,464 |
1480년
12월
19일
1480년 11월 18일 |
갑오 | 유성(流星)이 하늘 한가운데에서 나와서 손방(巽方)으로 들어갔다. [조선실록 [원전] 10집 175면] |
| 10,463 |
1479년
2월
26일
1479년 2월 5일 |
임진 | 햇무리[日暈]하였는데 양이(兩珥)가 있었다. [조선실록 [원전] 9집 693면] |
| 10,462 |
1477년
4월
6일
1477년 윤2월 23일 |
신유 | 한 별이 각성(角星)에서 나와 간방(艮方)으로 들어갔는데, 모양이 병(甁)과 같았다. [조선실록 [원전] 9집 432면] |
| 10,461 |
1477년
1월
14일
1476년 12월 30일 |
기해 | 성절사(聖節使) 이봉(李封)이 치계(馳啓)하기를, “12월 11일에 신이 해주위(海州衛)에 이르렀는데, 2경초(二更初)에 지름이 4, 50척(尺)쯤 되는 흰 달무리[白暈]가 있었고, 또 희미하게 청적색(靑赤色)을 띠고 무지개가 꿰어 있는 듯한 지름 1백 5, 60척쯤 되는 달무리가 달의 양 곁에 있어서 두 개의 달이 있는 형상이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는 무지개와 같은 햇무리가 사라지지 않더니, 12일 해가 2장(丈)쯤 높이 떴을 때에 붉은 햇무리가 있었고, 양 곁에 또 두개의 해가 있는 형상이었는데, 남쪽 햇무리는 피륙을 뉜 듯이 곧게 남쪽으로 5, 60척쯤 뻗고, 북쪽 햇무리는 곧게 동북으로 뻗었으며, 남쪽 것과 북쪽 것의 거리는 5, 60척쯤 되었습니다. 해가 4, 5장쯤 떠서야 비로서 사라졌습니다.” 하였으므로, 전교하기를, “관상감(觀象監)에 묻도록 하라.” 하였는데, 관상감에서 아뢰기를, “11일 1경부터 3경까지 달무리가 있었고, 12일은 검은 구름이 끼었습니다.” 하니,전교하기를, “피차가 같지 않으니,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모르겠으나, 이봉이 본 것이 없다면 어찌 그렇게 상세히 알겠는가? 헌부(憲府)를 시켜 관상감 관원을 국문(鞫問)하여 아뢰라.” 하였다. [조선실록 [원전] 9집 40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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