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천문기록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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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가능 기간 : 삼국시대 ~ 조선시대 (BC 37 ~ AD 1910)
고천문기록 검색결과
전체개수 25,360건
페이지 1,449/2,536
| 번호 | 양력날짜 음력날짜 |
일진 | 천문현상 |
|---|---|---|---|
| 10,880 |
1518년
2월
16일
1518년 1월 7일 |
정미 | 햇무리가 지고 양이가 있었다 [조선실록 [원전] 15집 386면] |
| 10,879 |
1517년
10월
5일
1517년 9월 20일 |
계사 | 햇무리가 졌다. [조선실록 [원전] 15집 330면] |
| 10,878 |
1517년
10월
11일
1517년 9월 26일 |
기해 | 밤에 유성(流星)이 문창성(文昌星) 자리에서 나와 북두성(北斗星) 자리로 들어갔는데 주먹 같은 형상에 5∼6척쯤의 꼬리가 달리고 흰 색이었으며, 유성이 천주성(天柱星) 자리에서 나와 천기성(天紀星) 자리로 들어갔는데 주먹 같은 형상에 4∼5척쯤의 꼬리가 달리고 붉은 색이었으며, 유성이 천진성(天津星) 자리에서 나와 패과성(敗瓜星) 자리로 들어갔는데 주먹 같은 형상에 3∼4척쯤의 꼬리가 달리고 붉은 색이었으며, 유성이 필성(畢星) 자리에서 나와 수부성(水府星) 자리로 들어갔는데 주발 같은 형상에 3∼4척쯤의 꼬리가 달리고 붉은 색이었으며, 유성이 천존성(天尊星) 자리로 들어갔는데 주먹 같은 형상에 5∼6척쯤의 꼬리가 달리고 붉은 색이었다. [조선실록 [원전] 15집 332면] |
| 10,877 |
1517년
8월
18일
1517년 8월 2일 |
을사 | 햇 무리[暈]가 지고 양이(兩珥)가 있었다. [조선실록 [원전] 15집 303면] |
| 10,876 |
1517년
9월
11일
1517년 8월 26일 |
기사 | 햇무리가 졌다. [조선실록 [원전] 15집 324면] |
| 10,875 |
1517년
9월
12일
1517년 8월 27일 |
경오 | 햇무리가 졌다. [조선실록 [원전] 15집 325면] |
| 10,874 |
1517년
6월
19일
1517년 6월 1일 |
을사 | 6월 초1일 을사(乙巳)에 일식이 있었다. [증보문헌비고 상위고 4, 206면] |
| 10,873 |
1517년
6월
19일
1517년 6월 1일 |
을사 | 일식(日蝕)이 있으므로 미시(未時)에 임금이 소복(素服)과 오대(烏帶)를 갖추고 인정전(仁政殿) 섬돌에 나아가 친구(親救)하였다. 전날 밤 야대(夜對)에 《근사록(近思錄)》을 진강(進講)하고 인하여 일식의 변고를 논할 때에 ‘임금이 친구하여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임금이 친구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실록 [원전] 15집 277면] |
| 10,872 |
1517년
6월
19일
1517년 6월 1일 |
을사 | 해가 내편법(內篇法)의 시각을 지나도록 일식하지 않더니, 외편법(外篇法)의 시각인 미초 삼각(未初三刻)에 이르러서야 일식하였다. 일관(日官)이 남쪽 계단으로 올라와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변고가 있음을 아뢰고, 사향(司香)도 남쪽 계단으로 올라와 향안(香案) 앞에 부복하여 세 번 향을 올리고서는 또 부복하였다가 물러갔다. 이에 남쪽 계단에 있는 북을 울리니 동서(東西)에 있는 북도 따라 울렸는데, 오래되어 향로의 연기가 꺼지자 사향이 또 향을 올렸다. 연기가 꺼지면 사향 2인이 오르내리며 향을 올렸는데 이렇게 하기를 모두 아홉 번 하였다. 병조 판서 고형산(高荊山)이 동쪽 계단 위에 시립(侍立)하였다가, 서쪽 햇빛이 차휘(遮暉) 아래로 들어 어의(御衣)를 비추려 하는 것을 보고 좌랑(佐郞)을 시켜 승지에게 말하여 전계(轉啓)하기를, “자리에 햇빛이 비치려 하니 사약(司촻)으로 하여금 급히 차휘를 치게 하소서.” 하니, ‘치지 말라’ 전교하였다. 신초 삼각(申初三刻)에 이르러 해가 다시 둥글어지니 임금이 드디어 대내로 돌아왔다. [조선실록 [원전] 15집 278면] |
| 10,871 |
1517년
6월
19일
1517년 6월 1일 |
을사 | 6월 초하루 을사(乙巳)에 일식이 있었다. [국조보감 제 19권 22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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