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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의 발달

로켓의 개발
로켓이라는 물체가 처음으로 생겨난 것은 중국에서 화약이 발명된 후, 이를 무기로 응용하여 사용하면서부터이다. 문헌에 보이는 로켓 중 가장 오래된 로켓은 1232년 중국에서 사용된 '비화창'(飛火槍)으로 이는 불을 뿜으며 날아가는 창을 뜻한다. 이 비화창은 창의 앞부분에 화약을 넣은 통을 설치한다. 그리고 그 통속의 화약을 태우면 화약이 맹렬히 타면서 연소가스를 뒤로 분출하며 그 반작용으로 앞으로 날아가는 원리이다. 그리고 목표물에 도착해 터지면서 주위를 태움으로 당시에는 상당히 위력적인 무기였다.

신기전
사진은 우리나라의 '국조오례서례'에 기록된 신기전의 모형이다. 이처럼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영국, 인도에서도 로켓은 무기로써 개발되어졌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최무선에 의해서 세워진 화통도감에서 당시 출몰하던 왜구들을 물리치기 위해 '화전'(火箭), '주화'(走火)와 같은 화약무기들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무기들은 화살의 앞쪽에 화약을 붙여서 방화용 무기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화약을 다루는 기술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로켓이라고 불릴 만한 '신기전'(神機箭)이라는 무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그 당시 시기는 1400년대로 유럽의 1600년대에 비해서 훨씬 앞선 것이었다. 신기전은 화약을 넣은 약통과 긴 막대기를 연결해서 사용하는 무기로, 약통에 의해서 먼 곳까지 날아가 목표물의 주변에 불을 지르고, 약통 안에 있던 쇳조각들을 퍼뜨려 적들에게 피해를 주는 무기였다.

1230년대 몽고의 세계정벌로 중국의 화전은 여러 나라로 퍼지게 되었다. 몽고군이 사용한 로켓은 아라비아를 거쳐 이탈리아로 전파되었고, 곧이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각각 연구하고 개발하여 독창적인 무기로 발전시켜 나갔다. 인도는 1750년대 '아리'(Ari)라는 로켓을 개발하였고, 영국은 인도의 것을 개량하여 '콩그레브'(Congreve)라는 로켓과 함께 여러 종류를 개발하였다. 이 콩그레브가 여러 나라로 퍼지면서 본격적으로 로켓이 연구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주로의 전개
여러 로켓이 개발되어 상업적으로, 인명구조용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우주로 눈길을 돌리면서부터 로켓을 이용한 우주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1865년 쥘 베른(Jules Verns)은 '지구로부터 달까지'(From the Earth to the Moon)라는 소설을 출판하였는데, 거대한 대포알을 이용해서 달까지 갔다 오는 내용을 적어놓았다. 이때 적어놓은 내용은 후에 이루어지는 아폴로 계획과 흡사한 내용들도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여러 편의 공상과학 소설들이 이후로도 많이 나왔는데, 이러한 소설들이 훗날 우주개척자들을 양성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로켓의 발전
치올콥스키의 로켓디자인
지구를 탈출할 수 있는 현대적인 로켓을 구상한 사람은 치올콥스키(Kondtantin Eduardovitch Ziolkovsky)라는 러시아인이었다. 그는 반작용에 의한 비행방법을 생각해 냈고, 액체수소를 연료로 하여 액체산소를 산화제로 이용한 현대적인 액체 추진제 로켓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1898년 '과학평론'이라는 러시아의 과학 잡지에 로켓을 이용한 우주여행에 관한 글을 보내게 되었고, 1903년 글이 게재되었다. 그 후 수많은 연구에 의한 개량된 로켓을 구상하였으나, 주위의 무관심으로 인한 재정적 궁핍으로 그의 연구는 이론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을 이용한 실제적인 로켓의 제작은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인 로버트 허친스 고다드(Robert Hutchins Godard)와 독일의 과학자들에게 넘겨지게 되었다.

고다드
고다드는 열효율을 50%로 높여서 사용할 수 있는 액체산소와 액체수소를 이용한 로켓을 구상했으며 실제로 이를 이용해 수많은 실험을 실시하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고도 70km까지 올라갈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하였다.

고다드의 연구와 병행하여 독일에서도 로켓연구가 진행되었다. 독일에는 1927년 독일우주여행협회(Verien fur Raumschiffahrt)가 조직되어있었고, 이들은 우주여행과 우주 관측용 로켓연구를 목적으로 자비를 들여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액체산소와 석유나 알코올과 같은 연료를 혼합하여 연소실에서 연소시켜 분사시키는 방식을 사용하는 로켓엔진을 개발하였고, 고다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실험을 실시하여 수직으로 최고 2km까지 상승하는 로켓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스푸트니크 1호
1933년 9월 18일에 마지막 로켓발사 실험을 끝으로 연구비 조달이 어려워 협회는 해체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당시 독일 육군은 신무기 개발을 목적으로 베를린 대학 공학박사 출신인 발터 도른베르거(Walter Dornberger)와 우주여행협회의 회원 이었던 베르너 폰 브라운(Werner von Braun)에게 로켓을 개발하도록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페에데문데(Peenemunde) 로켓 연구기지가 세워졌고 많은 과학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로켓을 개발하게 되었다. 결국, A-1, A-2, A-3, A-5 로켓과 함께 최종적으로 V-2로켓이 완성되었고 계속 개량되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에 큰 피해를 주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전쟁 중에도 페에데문데의 과학자들은 로켓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으나, 독일의 패배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연합군에게 이들의 기술이 넘어가게 되었다. V-2로켓의 부품과 이를 개발하였던 많은 과학자들은 미국으로, 실무진들과 기술자들은 소련으로 가게 되면서 이 두 나라의 로켓 개발의 근간을 이루며 훗날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우주상공으로 띄움과 동시에 두 나라의 본격적인 우주대결이 시작되었다.
최종수정일

2017년 6월 19일